FACTORY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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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ade 2013. 1. 8. 00:09

 

늦잠을 잤다.
새벽엔 의식적으로 잠을 깨운다.
눈뜬 시체처럼 얼마간의 시간을 버티다 늦잠을 잘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지끈 거리면 다시 잠에 든다.
그리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난다.

멜버른에 와서부터 의식적으로 이 패턴을 반복했다.
혼자 출근하는 교를 볼 자신이 없어졌다.
매일 일때문에 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없이 주5일,아침마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사람마냥
우리의 생계를 위해 일을 가는 교를
어느 순간부터 마주하기가 어려워졌다.

모든게 미안해 졌고,
모든게 나때문인것 같이 느껴졌다.

낮에 집 마스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아침,여자친구를 일터에 데려다 주고 와서 자신의 출근 준비를 한다고 했다.
친절하고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 한번도 못해본 것이다.
데려다 주기는 커녕,이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는 정말 자신이 없었고,미안했다.

시각 장애인 1급.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노력도 해보았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의 역할을 찾고 싶었다.
이젠 그것들도 너무 당연해져 버려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끝없이 우울해졌다.

느즈막히 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나니 딱히 할게 없어 밥이 아닌 다른걸 먹었다.
샤워를 하고,또 할게 없어 다시 밥을 먹었다.
그리고,구역질이 났다.
하.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니 더욱 침체되어갔다.
아.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교는 요즘 힘든 호주생활의 막바지에서 복학 준비를 하며,
좋아하는 공부를 할 생각에 들떠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준비하고,계획하고.
그 시간 만큼은 즐거워 보였다.
부러웠다.
무언가를 상상하다 끝이 나기도 전에 체념해야 하는 나와는 달랐다.
그게 부러웠다.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데,내가 책임져야 한다는게 이상했다.
사실,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빛을 잃어버린 눈으로 생이 다할 때까지 버티고,견뎌애 하는게 책임을 다하는 거라면,
비겁한 인간이 되고싶다.

보란듯이 다르게 살고 싶었다.
잃은게 있는만큼,얻은것 또한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소수자가 되었지만,
폼나게,찐하게 멋지게 살 자신도 있었다.
숨고 싶지도,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멋진 남자친구도 있고,
좋은 친구들도 있고,
소중한 가족들도 있고,
남부럽지 않게 이나라,저나라 떠돌아도 봤고,
그래,되려 남이 나를 부러워할 만큼 많은걸 가졌다,

하지만,시각 장애인 1급.
이 굴레를. 벗어나 내 인생을 바꿀 자신이 없어졌다.
누구든 넘어지기 마련이라고 한다.
근데,나는 좀 무섭다.
넘어 졌는데,
설마 앉은뱅이가 된것은 아닐까 두려워 졌다.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 몰라 오싹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