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데복음

20131013 용지호수

Maade 2014. 12. 5. 23:30


내가 당신을 보는 방식의 빛의 투영에 의한 시각적 판단이 아니다.
손끝, 발끝, 코끝, 귀끝 모든것으로 부터 나는 당신을 본다.

나의 가슴은 어느 유명 화가의 1908년작과 꼭 같았다.
16세기 독판화 인체구조론에서 영감을 받은듯한 그림을 보니 내 가슴이 그리 쳐진것만은 아닌가보다.
뭉특하지만 어쩐지 베일것 같은,펼쳐진 안경테의 끝부분이 영 거슬려 얼른 접어두었다.
지금은 무엇에도 베일 수 있는 지경이다.
한가로이 부는 미지근한 가을바람에도,연하디 연한 연두 풀잎에도.
이젠 클래식이 되어버린 어느 유명 화가의 그림에도.

앉은 자리가 한번 '퉁' 울렸다.
내 엉덩이 밑, 풀잎 돋아난 흙 밑 어딘가에서 무게의 중압감이 힘든가보다.
자리를 털고 그만 일어나 줘야 겠다.
이제 어디로 또 발걸음을 옮겨봐야 할까?
2008년 12월 이후,세상은 나에겐 너무 낯설다.처음 와본 행성처럼.
시계를 보니 오후 4시44분이다.참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어느정도 숫자에 연연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4시44분이 지나가길 잠시 기다렸다.

손가락 끝 쌀 한톨만한 크기로 돋아난 살집을 뜯어냈다. 피가났다. 아팠다.
피까지 날줄은 몰랐기에 뜯어냈다. 이별할줄 몰랐기에 사랑을 시작한건 아니었다. 그렇게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아팠다.다 알고 있었지만 아픈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떤이는 손에 난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고, 어떤이는 뼈 한두개쯤은 부러져야 아프다고 한다. 나는 어느정도 강도에 아픔을 느끼는 족속일까?
그는 실험이라도 하듯 각기 다른 강도의 멸시와 모멸을 나에게 던진다.
이건 어떤 이벤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100일, 1년, 2년, 1000일, 생일 이런것 따위는 잊어버려도 그는 다른류의 이벤트,
모멸감 정도를 주기적으로 나에게 선사한다.
참 다정한 인간이라고 해야하나?
길을 걷고있다. 길을 잘못든것 같은데 돌아갈 용기가 없다.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들이 있고, 나무가 있고, 좁은길이 나있다. 옆으로 난 한 차선엔 움직이는 차들이, 그 옆 차선엔 정지된 차들이 서있다. 점점 해가 지나보다. 바람이 조금싹 차가워 진다. 어둠이 내리면 어쩌지?
픽셀로 이루어진 밤은 불투명한 낮보다 두렵다.

코너를 도니 아까와 비슷한 길이 나왔다. 길 양쪽으로 긴 나무들이 가지런히 서있고, 곳곳에 원목 밴치들이 있었다. 분명, 40분 가량을 걸어왔는데 40분 전 과 정말 비슷한 길이다. 이것은 내가 길을 잘 모른다는 얘기다. 어쩌면 길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도시가 얼마나 특색이 없는지도 말이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를 사랑해서 같이 있는건지. 아니면 시각 장애인으로 혼자 산다는게 두려워 그를 붙들고 있는건지.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비겁하다.그래, 나는 늘 비겁했다.
내 감정에.
내 마음에.
늘 그런식으로 비겁하게 살아왔다. 모른겠다는 말로 나에게서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여기까지 와버렸네.
모르겠다.

목적지에 다다랐다.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왔다. 인생도 길이라던데.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채 어쨌든 살아져도 되는건가?
나는 시련의 한복판에 던져졌을 때 주로 글을 쓴다. 그런점에서 어쩌면 이런 상황들이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 혹시, 그가 나를 훈련시키고 있는걸까? 참 우스운 생각이다.
그래,기대하진 않았지만 바램은 있었다. 기대가 주는 부담감을 잘 안다. 난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건지, 기대를 바램으로 미화시키곤 했던것 같다. 생각해보니 엄청 찌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