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ade 2023. 7. 24. 15:22


‘‘옷이 너무ㅒ뻐요.’
‘셔츠 진짜 잘 어울리네요.’

저 셔츠를 입고 나가는 날은 마주한 사람마다 꼭 의상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우리 할머니 유품이야.”
하고 말해 주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어느새 좋은 반응은 깊은 관심으로,  호기심은 호감으로 변해있었다.

16살, 부모님의 헤어짐으로 나는 부산 할머니 댁에 보내졌다.
나와 함께 이주된 것은 동생과 옷가지 몇 벌,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다.
할머니 나름대로 꾸며놓은 그 방, 피아노 의자에 앉아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방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할머니의 장롱.
나뭇결이 살아있는 정갈한 장롱이었다.
그것의 문을 처음 열었던 날,
나의 미학적 탐험의 문도 열렸다.
매일 들여다 보아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마법 옷장.
내 할머니의 장농.

이세이미야키 주름 다 펴버릴 찐 주름 보라 색 드레스가 생각난다.
옥 빛 또각  구두와 엣지가 도드라지는 직사각 라탄백, 하얗고 부드러운 실크 코르셋, , 레오파드 시스루 롱셔츠와 겨울에 걸치고 나가면 온 동네 할머니들이 다 탐내는 밍크 숄까지.
다양한 원단에서 위로를, 다채로운 색감에서 격려를, 각기 다른 멥시에서 평온을 찾은 나는  더이상 낯선 교복을 입은채  피아노  의자에 앉아 울지 않았다.

그 장롱안에는 나의 미적 판타지가 걸려 있었다.

할머니 몰래 그 아름다운 것들을 입고, 걸치고, 두르고, 들고, 신고 다니며 참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오만방자 하던 내가 만들었을 담배빵 때문에 할머니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 까.
이건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를 떠나,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이제는 나의 단촐한 옷장에서 숨 쉬고 있는 할머니의 유품들.
나는 할머니와 참 많이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