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3 살림 식구

새로운 세탁기가 왔다.
외국을 떠돌던 교와 나는 2012년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 수중에 있는 돈은 현찰 100 만원이 전부였다. 교의 졸업을 위해 우리는 경남 창원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는 먼저 내려가 집을 구한 뒤?
나에게 창원으로 오라고 연락을 했다.
집 주인은 안채를 빌려 주고 15 만원이라는 월세를 받았다.
마당에 공용세탁기와 옛날식 화장실이 있었다. 교는 새벽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 하는 나를 위해 요강을 준비했다. 참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월세 25만원짜리 가게 자리를 하나 얻었다. 반지하였다. 우리는 그곳에 거주하며 개인작업도 하고, 핸드메이드 소품도 판매하고, 인문 만화책방도 열었다. 역시 화장실이 없었고, 주인이 제공해 주는 세탁기도 없었다. 그 당시 교의 친구가 가까운 곳에 미술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작업실 열쇠를 하나 복사해주며 언제든 와서 세탁기를 쓰라고 했다.
빨간 빨래 바구니를 손에 들고 세탁을 하러 친구의 작업실로 향하던 언덕길이 생각난다. 빨래가 다 돌아가는 동안 그 작업실 안에서 벽에 세워져 있는 그림들을 둘러 보며,
붓도 만져 보고, 손에 물감도 무쳐 보며 놀았다.
그 안에서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다.
교는 졸업 후, 서울에 있는 학교 교사로 취직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모았다.
우리는 둘이서 한 달에 120 만원에서 15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나는 매달 100 만원씩 10개월 동안 저금을 하여 1000 만원을 만들었다.
그것이 2013년 우리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보증금이 되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이었을 것 같은 데,
하나도 그런 줄 모르고 재미있게 살았다.
우리가 서울에서 구한 집은 인터넷으로 찾았다. 실제로 가본 적도 없고 정말 이사를 할 지도 미지수였지만,
나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월세를 깎았다.
제법 넓은 방 하나 와, 둘이서 딱 잠만 잘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그것보다 좀 더 작은 화장실 하나, 그리고 더 작은 주방 하나.
아주 오래 되고 허름한 다가구주택의 1층이었다. 오래된 덕분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이 서울로 왔는데,
엄마가 세탁기와 냉장고를사라며 70 만원을 보내 주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 세탁기와 냉장고를 사 보았는데, 집이 너무 작아서 7kg 짜리 세탁기와 250L 짜리 냉장고를 샀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순백색으로 골랐다.
수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이 오고 가며 우리 집 세탁기와 냉장고를 이용했다.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살며 혼인도 하고, 서로도 생겼다.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고 싶었지만 주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서로가 태어났다
그때 우리 엄마와, 교의 엄마는 똑같이 말했다.
큰 냉장고 와 좋은 세탁기로 바꾸어 주겠다고 .
나는 단번에 거절 했다.
우리가 새로 이사한집이라고 갑자기 크기가 엄청 커졌을리 없고, 멀쩡한 제품을 바꿀 이유는 더 없고,
서로는 24개월 내내 모유를 먹으며 저장 식품이 아닌, 바로 바로 만들어진 신선한 이유식을 먹었기때문에 우리에게 큰 냉장고 와 세탁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1년 동안 천기저귀를 사용 하는 서로를 생각하여 삶기 기능이 가능한 3kg 짜리 작은 세탁기를 중고로 구입 했다. 그렇게 두 세탁기가 나란히 베란다에 놓여 함께 지내다 서로가 세 살이 넘어 갈 때 아기 세탁기는 다른 집으로 보냈다.
세 번의 이사와 네 번째 집에서 11 년째 함께 살고 있던 세탁기의 탈수기능에 문제가 발생한지 반 년이 지났다.
흔들어도 보고 꿀밤을 때리듯이 콩 때려도 보고, 달래도 보고,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겨우 겨우 세탁과 탈수를 해 오다 올해 세탁기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통돌이 세탁기를 선호하여, 하얀색 통돌이 세탁기를 중심으로 검색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차이가 없는 걸 보니 내가 좋아하는 통돌이 세탁기는 별로 인기가 없나 보다.
이번엔 예전 보다 조금 더 커진 12kg 짜리로 선택했다.
이제 서로도 점점 커서 옷도 커지고, 활발하게 노느라 늘 때가 타서 오는 옷들을 보니 조금 더 큰 세탁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치 기사님들이 11년 된 세탁기를 수거해가며 오래 잘 쓰셨네요~ 하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와 세탁기에 입은 옷을 벗어 던지며 나의 더러운 마음도 씻겨 나가길 기도 하던 날들.
타인의 빨래를 돌리며 나의 것처럼 깨끗해 지기를 바라던 마음 .
내 인생도 세탁 될 수 있을까? 하며 뜬구름잡던 시간들.
고마웠어. 나의 사물싣구,
세탁기가 거실을 지나 현관문으로 나가는 동안 주방에 서 있는 냉장고는 그걸 다 지켜 보았겠지.
안녕, 살림 동기야, 잘 가. 하고 인사 했을까?
아직 건재한 250리터짜리 냉장고는 우리 세 식구 의 먹거리를 충분히 건사 하며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