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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데복음

201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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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마데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나는 말한다. "마데"
사람들은 갸우뚱 거린다. "마데? 본 itistory-photo-1명이에요?"
나는 생각한다. '이름이라는게 뭐지? 본명은 뭐지? 그런게 뭐가 중요한거지? 왜 되묻지?'
누군가 또 물어본다. "이름이 뭐예요?"
나는 다시 대답한다. "마데"

사람들이 묻는다. "몇살이예요?"
나는 대답한다. "82년생이요."
사람들이 말한다. "서른살인가?"
나는 생각한다. '서른이고 스물아홉이고 서른하나고 그게 뭐가 중요한거지?'
누군가 또 물어온다. "몇살이에요?"
나는 다시 대답한다. "82년생"

아무튼 나는 박마데고 82년생이다.
부산의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두살때 서울로 온 나는 고향이 서울인지 부산인지 모른다. (중요한건 아니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학원을 다섯개나 다니며,
단연 엘리트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불행했지.)
7살무렵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모든게 싫었지.)
저축왕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마데는 중학생이 되었고,
그 당시 삐삐가 출시된 덕에 공중전화와 친분을 쌓으며,
하염없이 목적없는 누군가의 회신을 기다리곤 했었다
중학교 이학년이 되어 엄마,아빠가 이혼을 했고,
마데와 마데의 동생은 부산의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의 이혼에 대한 충격은 없었다.(가족은 원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나는 유일한 서울학생으로 주목받았고,
학교에서 논다는 아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내가 그곳에서 버틸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사랑하는 할머니 덕이었다.

할머니 집은 미로의 신기한 구조였다
구석구석 공간이 많은덕에 어디든 숨을 수 있었고,
언제든 울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시작되던 봄이었나,
이상한 일이 생겼다
엄청나게 큰 새장안에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마데.
새장밖으로 천천히 스쳐가는 불투명한 사람들.

눈을 떴을땐 보름정도가 지나 있었다.
'스티븐 존슨 신드롬' 이라...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의 이름을 딴 병이었다.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취사율이 높다는 이 병이 갑작스레 찾아왔고,
그 와중에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다들 떠들어댔다.

하루종일 짜여진 일과에 맞춰 주사와 약과 검사가 계속되었다.
마데는 생각했다 '아 내가 지옥에 왔구나'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돈을 갖다바쳤다.
그러던중 열아홉이 되었고,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마데는 피어싱을 좋아했고,술과 담배를 좋아헀고,음악을 사람했고,
문신을 좋아했고,흑인머리를 좋아했고,그림과 영화를 좋아했다
이것들은 항생제보다 좋았고,진통제보다 효과가 있었다
많은것들이 이상했고,낯설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한국에서 극심한 갈증을 느꼈던 마데는 같은것을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완전하게 자신을 이해받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 교를 보았지.
이렇게 저렇게 지구에서 가장 잘 노는 인간으로 살다보니,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 되었고,닥치는대로 돈을 벌었다.
다행인것은 늘 하고싶고 할 수 있는 일만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이사이 가끔씩 교를 만났고,우린 친구도 연인도 아는사이도 모르는 사이도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아닐수도 있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기형적이었지.)
돈을 얼마를 벌든 늘 반은 병원비였다.(우울했지.)
스물여섯 마데는 그동안의 일을 다 접고,난생처음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열정과 열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치열하게 실내건축 공부를 했고,컴퓨터 아트에 심취하게 되었다
자신을 책임져야 해던 마데는 겨우 일년의 공부를 마치고,바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쪽 바닥에 있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일주일에 3일은 철야 3일은 야근.
힘들었다.하지만,즐거웠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건 정말 마데스럽구나."
그랬다.마데는 늘 영감에 차 있었고,그 어떤일이 들어와도 다 그려낼 수 있었다.(치열했고,즐거웠지.)
어느날부터 잠깐씩 뒷골이 땡기거나 두통이 왔다.
어지럽기도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하고 노는 시간도 모잘라 잠도 안잤는데,병원에 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삼년을 보내고 나니 녹내장 말기가 왔다.
참... 우습다.웃기다.이상하다.
정말 시트콤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지만,유독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은 일들...
서글펐다.

회사를 그만두고 연대 세브란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약을 바꿔가며,늘려가며,수술을 해가며,시간을 보냈다
눈은 점점 멀어져가고 신장도 폐도 심장도 허리도 아팠다.
아픔은 점점 커져갔고,통장의 잔고는 점점 작아져갔다
응급실에 가는 돈이 아까워 아침까지 숨을 참고 기다렸다가
기어서 일반 병원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죽을 생각만 했다.
사는게 지옥이었으니까.
죽어서 지옥을 간다한들 두렵지도 않았다.
육개월동안 내가 먹은건 담배와 술,약 밖에 없었다.

2010년 8월 교가 마데를 찾아왔다
약 구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십년간의 상처에 더께가 자리잡은 마데는 모든걸 놓으려 했지만 교의 내민손을 잡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시작된 새로운 관계였지.)
이러쿵 저러쿵 비척거리던 년,놈 둘이서 등맞대고 살다보니 어느새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홍대를 지나,
대구를 지나,
삼청동을 지나,
필리핀을 지나,
싱가폴을 지나,
말레이지아를 지나,
태국을 지나,

마데와 교는 중국의 웨이팡 이라는 크고도 작은 도시에 자리를 틀게 되었다.

나는 박마데고 82년생이다
나는 비관적이고 우울과 친하고 모든걸 말하지 않고도 모든걸 참고도 살 수 있는 박마데다
나는 세상에 미련이 없고 행복이나 사랑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박마데다
나는 불행이 무섭고 삶이 무거운 박마데다
나는 어둠속에서 비틀거리는 박마데다

어느날일까
어느순간일까
어디에서일까
왜일까
마데가 변하고 있다

육신의 삶을 끝내려고만 했던 박마데가 사랑을 말하고 믿음을 말하며 현존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변하고 있다
조급하지도 않게 조금은 천천히 박마데인 내가 나로 살고 있는것이다

이건 영화에도 책에도 나오지 않는
박마데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