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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데복음

이야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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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기타리스트 이자 프로듀서 였던 아빠덕에 늘 집안엔 악기가 넘쳐났고,
동생과 나는 악기나 장비에 낙서를 하거고,던지며 놀기 일쑤였다.
그땐 고놈들이 그렇게 고가의 것들인지 몰랐기 때문에,
어린 우리 남매는 아빠가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나이 5살 이었다.

1994년
예술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매일같이 특훈을 받아야 했다.
어릴적부터 늘 쳐오던 피아노 였지만,입시의 벽은 열세살 나에겐 그저 높기만 했다.
음악을 듣는것도,
피아노를 치는것도,
점점 질려버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사는게 참 내 마음같지 않구나'

20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는 기분에 전세계가 도취되 있었을때,
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스티븐 존슨 신드롬' 이라는 원인 불분명의 휘귀병으로
한달여간의 혼수상태가 지나고,퇴원을 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의 부재로 홀로남게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열아홉살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지금과 달랐다.
다른 세계를 찾아 헤매던 소녀는 피어싱과 밴드음악에 심취 했으며,
난해한 유럽영화나 지금봐도 이해하기 힘든 철학책들을 뒤적이며 늘 고뇌에 빠져 있었다.
비주류를 사랑했고,보수에 저항하며
'난 틀린게 아니라 다른것일 뿐'이라고
청춘의 고통과 유희에 녹아있었다.

2006년
노는것 말곤 할줄 아는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에
오랜만에 '공부'라는 화두가 되살아났다.
어릴적 64색 크레파스를 놓고 아빠의 악기들을 예쁘게 만들어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색칠하고 그려대던 때가 생각났다.
(아빠는 화가 났지만...)
'색(color)'과 공간(space)'에 탐닉하며 인테리어와 그래픽 공부를 시작했다.
잠도 자지 않았고,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 하며 공부를 했고,취직을 했고,
괴짜지만 재능있는 사원으로 후배나 선배,혹은 동료로,작가로 사회에 속하게 되었다.

2008년
꽤 오랫동안 어지럼증에 시달렸지만 몸을 돌보기엔 일이 너무 좋았다.
그저 빈혈이겠거니 느꼈고,몇몇 약들로 간단히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나갔고,남는 시간엔 더 많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그 해 12월.
녹내정 말기 판정이 떨어졌다.

2010년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 함께해요."
언제 실명이 될 지 모르는 상태로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에 드나드는 상황 이었고,
내 젊은 열정의 댓가치곤 너무 혹독한 이 시련에
몸도 마음도 피폐한 채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자는 진심으로 나의 곁에 있었고,진정으로 나와 한께했다.

2012년
둘이서 등맞대고 산지가 어느덧 3년이다.사랑할때도 지칠때도 우린 늘 함께였다.
시각장애로 선택의 여지가 적은 나는 길에 나서는걸 두려워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욕망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글도 쓰고 싶었고,그림도 그리고 싶었고,혼자서 자전거도 타고 싶고,배낭을 메고 떠나고도 싶었다.

<온 몸의 끝:같은 세상,다른 눈.>
다름을 알고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에 심취하며 살아온 나는
이제 진짜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모두와 함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