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일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합니다.]
이 문자를 받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상 이데올로기’, 그 허상에 갇혀있는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손상자들은 극복과 재활을 요구받고 있다.
장애를 개인의 불행 서사로 만들어, 그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열심히 노력해서 정상인처럼 되어야 한다고 한다.
보편적 접근성이나 소수의 권리, 포용적 설계 같은 건 나중에, 나중에, 지금 말고 나중에.
그러니 너희들이 일단 우리한테 맞춰, 안되면 시설에 처박히던가, 집 밖으로 나오지 마.
이게 바로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이다.
점자 도서실에서 보내오는 이 문자 때문에 고대하던 글쓰기 수업에 나가는 당일이 자꾸 망설여진다.
‘그냥 예정대로 진행 한다고 하면 안 되나?
수업에 변동이라도 생기면 비정상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고 할건가?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장애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인데,
심지어 도서실에 글쓰기 수업인데,
언어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불편한 건 나뿐인가?
정상은 뭘까?
문자가 쌓이는 길이 만큼 불편한 마음은 깊어지고,
불만 석인 질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갔다.
교에게 나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여보, 내가 예민한 거야?”
++
요가 수업이 끝나면 항상 조촐한 다과 자리가 열렸다.
몇 분이 이번에 다녀온 나의 여행에 관해 묻길래,
정보도 드릴 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보였을 때 갔다 왔으면 더 좋았을걸...”
탁자 끝자리에서 빵을 먹고 있던 아저씨였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그 요가 모임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피아노 수업,
선생님과 잡담을 나누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눈이 무슨 상관이에요. 시력 좋아도 평생 유럽 한 번 못 가보는 사람이 더 많은데.”
내가 피아노 선생님을 잘 골랐다.
+++
피아노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문 앞쪽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택시를 기다렸다.
공간 안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우쿨렐레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각자 악기를 조율하며, 안부도 나누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쿨렐레 수업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앞에 앉아 있던 분이 말했다.
“저분은 단국대 나왔는데 음악을 전공했고, 저기 저분도 피아노 전공자야. 또 그 옆에 분도 일류대학을 나왔는데 머리가 엄청 좋아.”
모두 시각 손상자들이었다.
내 옆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쿨렐레 팀을 바라보던 분은 작게 읊조렸다.
“아이고 안타까워라.”
신체 손상자들은 소위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머리가 좋아도, 취미 활동으로 여가 시간을 즐겨도 안타까운 존재로 보이는구나.
나도 그렇게 안타까워 보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행히 택시가 빠르게 잡혀 표정으로 감정이 드러나기 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자신의 시선과 사고방식이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절대 모르겠지?’
++++
강원도 인제에 트래킹을 다녀왔다.
시각 장애인과 자원 안내자가 짝이 되어 왕복 3시간 30분 코스를 함께 걷는 날이었다.
인제도 처음이고, 개발이 안 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산길을 걷는 것도 드문 일이라 여러모로 좋았다.
나는 제법 잘 걷는 편이라, 낭떠러지와 물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트래킹을 완주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트래킹에 참여했던 모두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4인 식탁이라 모르는 분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나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으신 분이 물었다.
“전맹이야?” - 아니요.
“남편도 시각 장애인이야?” - 아니요.
“그럼 정상이야?”
웃음이 터져 버렸다.
입안의 음식물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신속하게 대답했다.
-그럼 저는 비정상 인가봐요.
나는 때로 의도적인 정적을 만든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정적 속에 사유로 들어가는 사람, 회피하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등 짧게 편집된 표정들이 파노라마로 펼쳐 진다.
그 광경은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에게 남편은 정상이라 다행이네, 라고 말했던 분의 활동보조인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비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야 하는데, 입에 잘 안붙어서 말이지.”
-연습하면 돼요.
나는 또 신속하게 대답했다.
+++++
요즘은 학교 소식도 알리미앱을 통해서 전달받는다.
[흡연 예방 교육] 이라는 제목의 알람이 떴다.
서로가 3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무수한 흡연 예방 교육을 받아왔다.
그 과정을 통해 담배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아이들마저도 담배라는 것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고,
담배와 불(라이터)이 짝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담배와 불이 만났을 때의 화학 작용으로 연기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로, 관심이 없던 누구라도 어떠한 종류의 관심을 가지게 할 만큼 흡연 예방 교육은 잦았다.
“흡연 예방 교육을 또 한데. 마치 아이들에게 흡연에 대해 주입하는 것 같아. 담배 인삼 공사랑 정부랑 교육청이랑 모종의 관계라도 있나 봐.
왠지 불편해.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아이들에게 실시되는 성교육도 석연치가 않다.
불특정 성범죄자를 설정해 놓고,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 라는 구호를 배워 온 서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나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공동체의 평화와 질서를 지켜 나갈 것인지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나는 까칠한 사람일까?
아니면, 감수성이 있는 걸까?
나는 예민한 사람일까?
아니면, 안목이 있는 걸까?
나는 프로 불편러일까?
아니면, 인권 의식이 있는 걸까?
나는 과민한 사람일까?
아니면, 솔직한 걸까?
나는 그저 이 세계를 열렬히 사랑하고 싶은 게 아닐까.
교에게 물었다.
“여보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는 정말 ‘너’ 같아. 그냥 마데, 완전 마데.
누구랑도 비교할 수가 없어.
비교할 필요가 없지. 비교가 안되니까.
그게 너무 특별하고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