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여성들은 해변에 놀러 가면 10대부터 70대까지 비키니를 입는다.
그렇다고 80대나 90대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는다는 말이다.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있다.
“유럽 여자들은 다 몸매가 좋은가 보지?”
그럴 리 만무하지 않은가.
태양의 뜨거움과 바다의 차가움, 바람의 질감까지 온몸으로 느끼기에 비키니만큼 제격인 의상이 또 있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토플리스(상의 탈의)를 더 선호하고, 추천하지만 한국에서는 어쩐지 꺼려지기는 한다.
아무튼, 비키니를 입고 말고는 체형과 나이는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베이비 핑크
태국 남부 섬 코팡안에 체류하던 중,
서로의 6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따오 섬으로 일주일간 놀러 갔다.
우리는 운 좋게 해변 바로 앞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잡을 수 있었다.
발코니에 앉아 매일 바다로 떨어지는,
너무 빨개서 불덩이 같이 보이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사치스런 자리였다.
우리 발코니와 붙은 바로 옆 발코니 방에는 백발의 프랑스 부부가 묶고 있었다.
매일 발코니에서 마주쳤기 때문에 가벼운 눈인사 정도는 나누며 지냈다.
야자수가 프린트된 비치팬츠를 입은 할아버지와 베이비 핑크 색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는
손을 잡고 태닝을 하러 매일 해변에 나갔다.
귀여웠다.
나는 토플리스로 해변 생활을 즐기다 보니 미처 태우지 못한 부분이 못내 아쉬웠는데,
코따오에서 네이키드 태닝을 하며 그 한을 다 풀어내었다.
거기는 정말 거리낄 것도, 신경 쓸 것도, 눈치 볼 것도 없이 모두가 편안한 자유로움을 누리는 곳이었다.
하루는 발코니에서 옆 방 할머니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해변에 있던, 누군가 가지고 놀다 버리고 갔거나 혹은 깜빡 놓고 간 모래 놀이 장난감이었다.
변변한 놀잇감 하나 없이 빈 몸으로 놀던 서로 생각이 났나 보다.
프랑스 할머니는 영어나 한국어를 못했고,
우리는 프랑스 말을 못 해 언어 소통이 되지는 않았지만,
고마움은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교는 망고를 예쁘게 깎아 발코니에 앉아 있던 옆 집 부부에게 건넸다.
망고 접시를 받은 할머니의 미소가 연분홍색 비키니만큼 귀여웠다.
+해운대
십수년에서 길게는 20여 년만에 부산 해운대 바다에 왔다.
올때 마다 묶는 부산역에 친구가 운영하는 호텔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해운대 바다 바로 앞에 숙소를 잡고 싶었다.
도착한 첫날은 저녁이어 그랬나, 생각보다 쌀쌀한 바람에 경직된채로 숙소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날은 훈훈해졌고, 한낮이 되자 태양은 뜨거워졌다.
‘이때다. 벗자.‘
나는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아, 그냥 내가 가지고 온 것 중에 가장 작은 것들을 위아래로 걸치고 해변에 드러누웠다.
다리도 뜨거워지고, 배도 뜨거워지고, 등도 뜨거워지고, 이마에는 얇은 땀이 맺히고, 앞뒤로 몸을 돌려가며 짧은 시간 깨알같이 구웠다.
아, 따뜻해. 행복해.
+ 우리 같이 태닝할래요?
시어머니와 같이 비키니를 입고 누워 태닝을 하는 상상을 했다.
아이스 커피도 나눠 마시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태닝 오일도 발라가며 그렇게.
우리 엄마야 이골이 났지만,
시부모님은 내 의상 취향에 깜짝깜짝 놀라시곤 한다.
아마 벗을때 마다 하나씩 드러나는 문신 덕도 있을 것ㅊ같다.
언젠가 엄마와 시어머니와 비키니를 입고
나란히 누워 태닝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올여름에는 야광 색 비키니를 한 벌 장만 해야겠다.